학부 때 교수님께서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가르쳐주시며, 서커스단의 코끼리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대초원에서 자유롭게 뛰놀던 아기 코끼리는 괴팍한 서커스 단장의 눈에 띄어 작은 오두막에 갇히게 된다. 코끼리는 강한 철기둥에 묶여 좁디좁은 이 오두막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으나 그의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로 인해 깊은 상처만 남게된다. 일주일, 열흘, 한 달... 발목 하나가 너덜너덜해진 코끼리는 더 이상 탈출을 시도하지 않고 생기 잃은 눈을 하고는 그저 서커스 단장이 주는 지푸라기를 먹으며 하루하루 그의 명령에 순응하는 삶을 살게 된다. 시간이 지나 서커스 장소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단장은 코끼리를 묶어둘 곳이 없어, 작은 못에 얇은 줄을 임시로 걸어 코끼리 발목을 채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코끼리는 자신에게 어떤 기회가 온지도 모른 채 평소처럼 무기력하게 허공을 응시하며 서커스 단장의 그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아무리 벗어나려 애를 써도 단장의 손아귀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것을 학습한 것이다.
이러한 '학습된 무기력' 이론은 가족 내 희생양으로 선정된 자녀가 왜 그를 착취하고 이용하는 가족들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지 설명해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희생양으로 선정된 자녀가 가족 내에서 어떠한 정서적 고통을 경험했기에 서커스 단에 묶여있는 코끼리처럼 주체성을 잃고 수동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감당해내게 된 것인지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희생양으로 선정된 자녀가 가족 내에서 경험하고 있는 정서적 고통
"나는 죄책감과 열등감을 느끼며 하루하루가 불안해요."
희생양이 된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죄책감을 느끼며 잘못된 일은 무엇이든 다 자신의 잘못이라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 특히 희생양이 된 사람의 경우 죄책감은 부모가 사랑을 거두어 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야기했던 과거에 있었던 처벌의 위협이나 실제 있었던 처벌 속에서 잉태된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느껴요."
자신의 부모로부터 소외감에 직면한 자녀는 관계를 깨뜨리는 창피한 행동과 태도를 가진 사람이 되어 부모를 불편하고 당혹스럽게 만든다. 희생양이 된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복수의 형태를 보이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거부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행동이 겨냥하는 것은 보통 부모와의 관계이며, 이것은 결국 아이를 희생양으로 만든다.
"나는 불안정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어린아이가 발달시켜야 하는 중요한 감정 상태 중의 하나는 가족 내에서의 안정감이다. 종종 이러한 안정감은 가족 내 역기능 혹은 불일치성으로 인해 획득되지 못한다. 또한 가족 내에서 애정적 결핍은 열등감을 초래한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이전의 내면화된 부모의 목소리에 큰 영향을 받는데, 그 목소리가 비난과 질책이라면 그 도전과제는 실패하고 만다.
"나는 이방인이에요."
희생양이 된 아이가 '나쁜' 사람으로 간주될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희생양이 된 아이에게 나쁘게 대하는 것은 바로 그 아이의 잘못 때문이라고 변명하면서 자신 안에 있는 나쁜 감정을 표출할 기회를 갖게 된다. 스트레스 수준이 매우 높은 가족의 경우 더욱 더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희생양이 된 사람에게 싣게 된다.
"나는 말하기가 두려워요. 내가 원하는 것에 따라 행동하기가 무서워요."
희생양이 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자기주장을 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들은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나쁜 일이며 자기 주장대로 행동하면, 처벌받아야 한다고 들어왔다. 그들은 자기주장을 하려는 본능을 부인하며 수동적으로 학대를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보인다.
"나는 화났고, 분노로 가득 차 있어요."
때때로 희생양이 된 사람 안에 갇혀 있던 분노는 이유 있는 강력한 감정의 격발로 폭발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주장성이 수동적인 공격성 양식으로 표출될 때까지 공격성을 순화하고 변형하면서 계속적인 자아손상의 욕구를 갖는다. 그의 수동공격적 행동은 그가 느낀 깊은 분노의 표현이자 자기 자신을 희생양으로 자리매김하는 방식이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가족 희생양화의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즉, 자녀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부모조차도 그들 스스로가 하나뿐인 소중한 자녀에게 어떤 무자비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의식적으로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녀들의 울부짓음을 회피하지 말고, 살을 찢는 고통을 견뎌내야 하더라도 가정 내에서 반복되는 악순환의 레파토리에 직면하여 이를 끊어내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대개 희생자로 만드는 이들은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느끼는 것이 매우 어렵기에, 가정 내에서 소외감을 경험하고 있거나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혹시 내가 가족 희생양의 정서적 경험과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없는지 점검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하루 빨리 서커스 단장의 통제 하에 있는 그 작은 오두막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참고도서] 가족희생양이 된 자녀의 심리와 상담(Vimala Pillari,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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